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귄터 폰 클루게 (문단 편집) ==== [[발터 모델#s-2.5.3|들소 작전]] ==== 중부집단군은 르제프 돌출부에서 쉴 새 없이 격전을 치러야 했지만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6군이 완전히 소멸되면서 더 이상의 인적, 물적 손실을 보충 받을 수 없었고 도리어 남부의 A집단군과 B집단군, 돈 집단군이 [[하르키우|하리코프]]까지 퇴각하면서 소련군은 남부집단군의 점령지를 재점거, 르제프의 남부 방면으로 9군을 포위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까지 갖게 되었다. 이에 대비하여 클루게는 1943년 2월, 르제프 돌출부를 포기하고 중부 전선을 축소하여 발터 모델 상급대장이 지휘하는 9군과 [[고트하르트 하인리치]] 상급대장이 지휘하는 4군이 연계하여 보다 치밀한 방어선을 구축할 것을 결정한다. 특히 발터 모델 휘하에서 오랜 시간 참모로 근무했고 이후에도 [[바그라티온 작전]]을 거쳐 1945년 2월까지 모델과 함께했던 당시 9군 참모장 [[한스 크렙스]]가 [[중장]]으로 승진, 클루게 직속인 중부집단군 참모장으로 영전하게 되면서 클루게는 9군의 후퇴를 히틀러에게 허락받았고 모델은 크렙스와 함께 입안해 두었던 르제프 퇴각 작전 ''''들소 작전(Operation Büffel)''''을 실행한다. 들소 작전은 종전 직후 전범 재판을 받던 국방군 장성들에게 전설처럼 회자되었고 지금까지도 독일 연방군 장교들에게 강의될 만큼 '''모든 것이 예정 시간표대로 진행된 퇴각 작전의 클래식'''으로 극찬 받고 있다. 9군은 자신들에게 협조하여 소련군에게 처형당할 운명이 확정된 르제프 주민들과 야전 병원 환자들을 가장 먼저 탈출시키며 장비 하나 두고 오지 않고 모두 챙겨서 성공리에 4군과 합류하여 [[스몰렌스크]] 방면으로 퇴각하였는데 [[이반 코네프]]는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을 질책받고 일시적으로 해임당했다. [[파일:1943년 스몰렌스크 중부집단군.jpg|width=750]] ▲ 1943년 3월 13일 스몰렌스크에서 히틀러의 사열을 받고 있는 중부집단군의 장성들. 히틀러의 왼편에 클루게가 원수 지휘봉을 들고 서 있다. 왼쪽부터 [[게오르크-한스 라인하르트|게오르크한스 라인하르트]] 상급대장, [[발터 모델]] 상급대장, [[고트하르트 하인리치]] 상급대장, [[https://en.wikipedia.org/wiki/Walter_Wei%C3%9F|발터 바이스]] 보병대장, [[한스 크렙스]] 중장. 이때 클루게는 중부집단군을 방문한 히틀러의 암살 계획을 제시받았으나 거절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